리차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는 ‘판타스틱’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 중의 하나다. 이는 단지 그의 이름이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나 <마이크로 결사대  Fantastic Voyage> 등의 판타스틱 장르의 고전들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판타스틱 장르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느와르, 스릴러, 전쟁 영화 등 거의 모든 영화 장르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플레이셔의 영화적 감수성과 적극적인 모험 정신은 특정한 경계나 작가적 취향을 넘어선다. 
 

1916년생인 플레이셔는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베티 붑’과 ‘뽀빠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플레이셔 스튜디오의 설립자인 맥스 스튜디오의 아들이기도 하다. RKO 스튜디오에서 이력을 시작한 플레이셔가 처음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놀랍게도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플레이셔는 몇 편의 느와르 영화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상상력과 스튜디오 프로덕션에서 익힌 그의 장인적 재능은 1954년 디즈니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해저 2만리>의 성공은 이후 <마이크로 결사대>, <닥터 두리틀> 등 플레이셔를 판타스틱 영화의 거장을 만들어 준 일련의 작품들로 이어졌다. 


 디즈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들 영화들은 짐짓 어린 관객을 타겟으로 한 어드벤처 장르로 보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셔의 환상 세계는 훨씬 겹겹으로 놓여진 다층적인 이야기와 의미들로 빼곡 차 있다. 전쟁 영화의 걸작인 <도라!도라!도라! Tora!Tora!Tora>나 희대의 엘리트 살인범 콤비인 로엡-레오폴드를 다룬 <강박충동 Compulsion>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었던 것처럼, 플레이셔의 판타지 안에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주변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2007 PiFan이 마련한 리차드 플레이셔의 회고전에서는 판타지 거장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잘 만나볼 수 있는 작품 4편이 소개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저 2만리>와 <마이크로 결사대> 외에도 초기 느와르 시절의 감성이 배어있는 디스토피아 SF <소일렌트 그린 Soylent Green>과 80년대 <코난 Conan the Destroyer>과 <레드 소냐 Red Sonya>로 이어지는 플레이셔의 레전드 액션 <바이킹>은 영화의 안과 밖에서 환상적인 모험가였던 플레이셔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